암빙벽등반

2012.03.29 11:16

당 뒤 제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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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피니즘의 선구자 머메리가 이 봉의 등정을 포기했던 이유는?



{FILE:1}


샤모니의 침봉들 사이로 흘러내리는 메르데 빙하를 배경으로 남서면을 오르는 백승기 선배.


 


누군가가 “알피니즘은 곧 머메리즘이다”라고 말한들 지나치지는 않을 것 같다.


보다 어렵고 다양한 루트로,


그것도 인공적인 보조수단에 의존하지 않고


인간 자신의 능력만으로 정당하게 산의 위험과 곤란을 극복해야 한다는 머메리즘의 골자인


 ‘정당한 수단으로(by fair means)’라는 경구가 있다.


머메리즘의 창시자 알버트 프레드릭 머메리(Albert Frederick Mummery·1855~1895)가 남긴 이 말은


아마도 지구상에서 인간한계의 극복을 추구하는 산악활동이 계속되는 한 절대적인 가치를 유지할 것이다.


정상 등정보다 그 과정의 어려움을 중시하는 현대 알피니즘은 머메리즘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


불변의 진리와 같은 바로 그 경구가 생겨난 봉우리가 있는데,


 당 뒤 제앙(Dent du Geant·4,013m)이다.


 


19세기 후반 당시의 알피니스트들에게 알려진 마지막 4,000m 미답 봉우리였던 터라


당 뒤 제앙은 많은 이들의 관심사가 되었다.


1880년에 머메리는


가이드 알렉산더 부르게너와 어떠한 인공적인 보조수단도 사용치 않고 남서면 등반을 시도했다.


그러나 그는 상단부의 크럭스 구간을 돌파하지 못하고 그 말만 적어두고 내려왔던 것이다.


 2년 후인 1882년에 대규모 인원이


수많은 인공적인 보조수단을 동원해 4일간 당 뒤 제앙의 남서면을 공략해 초등하였는데,


 이후 오늘날까지 셀 수 없이 많은 이들이 머메리의 진언은 외면한 채


인공적인 수단도 마다하지 않고 오르내리고 있다.


머메리가 시도해 돌아섰던,


초등루트인 남서면은 당 뒤 제앙을 오르는 가장 일반루트가 되었으며


 여러 구간에는 굵은 고정밧줄이 설치되어 이제는 관광 상품화가 되다시피 했다.


머메리즘을 따르지 않는 보통의 산악인들에겐 이보다 멋진 알파인 화강암 봉우리는 없기에


 더없이 즐겁게 오를 수 있는 알프스의 4,000m 명봉이다.



{FILE:2}
1 헬브로너에서 제앙 빙하를 가로질러 당 뒤 제앙으로 향하고 있다.


2 아침 햇살을 등진 당 뒤 제앙의 긴 그림자가 발레 블랑쉬 설원에 드리워져 있다.


3 여섯번째 피치의 크고 양호한 크랙을 오르는 여성 클라이머 뒤로 저 멀리 몽블랑의 동면이 보인다.


 


몽블랑 횡단 파노라마 곤돌라 타고 등반 기점으로 접근


몽블랑에서 시작해 동쪽으로 이어진 3,000m 이상의 국경능선이 그랑 조라스까지 이어지는 중간 즈음에


 ‘거인의 이빨’처럼 돌출해 있는 화강암 침봉 당 뒤 제앙은 어디서 보나 두드러진 자태를 뽐내고 있다.


 동서남북 어디로든 멋진 등반선이 개척되어 있으며 그중 남서면이 가장 인기가 있다.


 샤모니에서 지내고 있는 필자로선 꼭 오르고 싶었던 봉우리였다.

어느 한 해 여름에는 전날 내린 눈 때문에 포기한 적도 있어 늘 염두에 두고 있던 차에 마침 기회가 왔다.


지난해 여름 내내 샤모니에서 머문 백승기 선배와 함께였다.


우리는 아침 7시에 숙소를 나서서 에귀 디 미디행 케이블카에 탑승했다.


3,800m 고지로 직상하는 첫 케이블카에는 대부분 산악인들이었다.


그들 모두 한낮의 태양열이 설사면을 녹이기 전의 이점을 활용하는 이들이었다.

얼마 후 에귀 디 미디 전망대에 오른 우리는 곧장 몽블랑 파노라마 횡단 곤돌라에 탑승했다.


첫 곤돌라지만 우리 외에도 이용객이 몇 명 더 있다.


 발레 블랑쉬 설원 위를 가로지른 곤돌라는


몽블랑 산군의 속살 여기저기를 다 보여주며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국경에 위치한 헬브로너 전망대(Helbronner·3,462m)로 향한다.


곤돌라 아래로 펼쳐진 드넓은 설원에 아침 햇살을 등진 당 뒤 제앙의 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30분이 조금 못 걸려 도착한 헬브로너 전망대에서 우리는 웅장하게 솟은 몽블랑의 동벽과 남벽,


그리고 이탈리아 국경 내에 솟은 수많은 산들을 일별하며 배낭을 고쳐 멘다.

전망대에서 눈밭에 내려선 우리는 당 뒤 제앙 쪽으로 펼쳐진 제앙 빙하의 상단을 가로지른다.


 한동안 완만한 설사면을 걸어 내린 후 오르막이 이어진다.


우리 외에도 토리노 산장(Torino Hut·3,375m)에서 출발한 산악인들이 함께 가고 있었다.


십여 명 되는 그들 모두 당 뒤 제앙을 오르는 이들이었다.


캠핑 장비 등으로 한 짐 가득 짊어진 우리에 비해 가벼운 차림인 그들은 얼마 후 모두 앞서 갔다.


어차피 우리는 빙하 꼭대기에서 하룻밤 잘 예정이었기에 급할 게 없었다.

한동안 오르막길을 올라 온몸에 땀이 흐를 즈음, 작은 돌 언덕 위의 캠프지에 도착했다.


 한 시간 걸렸다.


이 지점에서 보는 파노마라가 장관이라 종종 찾는 곳이다.


작은 바위들 중앙에 아늑하게 마련된 캠프지에 텐트만 쳐 놓고 우리도 앞서 간 이들의 뒤를 따른다.


 아직 햇살이 닿지 않아 서향인 너덜바위지대 하단부의 쿨와르에는 낙석이 없었다.


기온이 올라가는 정오부터는 조심해야 하는 구간이다.

아이젠을 조이고 헬멧을 쓰고 피켈을 휘두르며 쿨와르를 오른다.


오르내린 이들의 디딤 자국이 있어 어렵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자일을 사용하지 않는다.


자신에 맞는 속도로 오른다.


경사가 급하지 않은 너덜바위지대라 따로 오르는 편이 편하고 빠르다.


아무렇게나 얹혀 있는 크고 작은 바위돌이라 조심해서 디뎌야 한다.


서쪽 면을 따라 오르던 길은 이제 남쪽으로 우회한다.


크고 작은 바위들 사이로 이어진 등행길이라 길을 잃기 쉽지만


자세히 보면 수많은 이들이 지나간 아이젠 자국이 눈에 띈다.



{FILE:3}


 (좌) 남서봉 정상에 올라선 에스파니아 산악인.


(우) 등반출발지점에서 만난 에스파니아 산악인들.


 


4,000m 고지의 화강암벽을 따뜻한 햇살 받으며 오르는 즐거움


캠프지에서 출발한 지 한 시간 반 만에 당 뒤 제앙의 정상부 바위 아래에 이른다.


 로쉬포트 능선으로 이어지는 설릉 출발지점에서


당 뒤 제앙 화강암 바위 아래쪽으로 설사면을 횡단해 등반출발지점에 닿는다.


우리보다 앞서 오른 이들이 등반준비를 하고 있었다.


에스파니아 산악인들이었다.


쾌활한 그들은 뒤늦게 도착한 우리들을 반긴다.

여기서 등반에 필요치 않은 아이젠과 피켈 등은 놓고 간다.


어떤 이들은 암벽화로 갈아 신고 가지만 우리는 가죽 비브람으로도 가능하리라 여겨 그냥 간다.


첫 피치는 고정로프를 따라 좌측으로 횡단해 직벽을 올라야 했다.


고정로프가 없었다면 쉽지 않은 구간이었기에 새삼 머메리가 대단하게 여겨진다.


 두 번째 피치는 5.8급 정도의 양호한 크랙이 이어져 있어 즐겁게 자유등반을 하며 오른다.


4,000m 고지의 화강암 벽에서 한낮의 따뜻한 햇살을 등지고 오르는 즐거움이었다.


손바닥에 전해지는 촉감이 좋았다.

세 번째 피치부터 손목 굵기의 고정로프가 설치되어 있었다.


머메리가 상상도 못했을 보기 흉한 인공보조물이었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보통의 알피니스트에게는 거부감이 덜하다.


여하튼 머메리에게 최대한 경의를 표하는 의미로 고정로프를 잡지 않고 오르기로 한다.

고정로프 좌우를 살피니 크랙 선들이 연이어져 있어 재밍을 하며 오른다.


 재미있고 즐거운 크랙등반이다.


물론 확보는 굵은 고정로프에 슬링을 감아 자일을 통과시킨다.


네 번째 피치 역시 크랙등반이었지만 다섯 번째 피치는 직벽 구간이었다.


 작은 홀드 몇 개만을 이용해 올라야 했다.


바로 옆에 있는 고정로프를 잡지 않고 자유등반으로 오르려니 괜히 더 부담스럽다.


고정로프를 잡을까 하는 유혹 또한 크다.


그러나 비브람 앞창을 미세한 홀드에 디디며 오르는 즐거움을 포기할 수 없어 그냥 올라선다.

뒤따르는 백 선배 뒤로는 메르데 빙하의 장관이 펼쳐져 있다.


샤모니의 침봉들과 드류, 에귀 베르트 사이로 ‘얼음의 바다’ 메르데 그라스가 굽이쳐 흘러내리고 있다.


 


여섯 번째 피치는 큰 크랙이 남쪽으로 이어져 있다.


앞서 오르는 여성 클라이머 뒤로 몽블랑의 동쪽 면이 훤히 드러나 있다.


이 방향에서 바라보는 몽블랑은 언제나 위압적이다.


 크고 좋은 홀드로 이어진 크랙 피치라 즐겁게 자유등반하며 오른다.


그러나 일곱 번째 피치는 달랐다.


직벽의 디에드르에는 손가락이 들어가는 크랙이라곤 없다.


출발지점은 오버행이라 몸이 뒤로 밀려난다.


한두 발걸음 떼고부터는 도저히 다음 등반동작이 연결되지 않는다.


이 지점에서 머메리가 돌아섰던 게 분명해 보였다.


백 년 전 알피니즘의 선구자가 오르지 못한 구간에서 현대의 보통 산악인은 아무리 궁리해도 해법이 없었다.


할 수 없이 고정로프를 잡는다.


정당하게 오르지 못할 바에는 깨끗이 단념한 머메리에 비해


인공보조물에 매달려 허둥대며 오르는 자신이 초라하게만 여겨진다.


어떻게든 정상에 오르고픈 얄팍한 등정주의의 발로였다고나 할까.

10m쯤 낯을 붉히며 올라선 후,


어렵지 않은 한 피치를 더 오르니 더는 고정로프가 없었다.


 정상부 능선에 올라선 셈이다. 사방으로 시야가 트였다.


이후 바위능선을 타고 길게 한 피치를 오른다.


그 꼭대기가 남서봉 정상(4,009m)이었다.


 하지만 당 뒤 제앙의 최고점은 건너편에 위치한 북동봉(4,013m)이었다.


 큰 홀드를 잡으며 클라이밍 다운을 해서 안부에 내려선다.


마지막 구간은 한 스텝이 모자라 두 발을 허공에 버둥거리며 내려선다.


 이후 바위능선을 가로질러 작은 직벽 구간을 오르니 마침내 정상이었다.

정상에는 성모 마리아상이 있었는데,


 낙뢰에 훼손된 채 한쪽에 모셔져 있었다.


오후 3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약 4시간 걸렸다.


 배낭을 내려놓고 알프스의 4,000m급 화강암 산정에서 호젓한 오후시간을 즐긴다.


 사방으로 펼쳐진 장관의 파노라마를 발아래에 두고 늦은 점심을 먹는다.


이보다 즐거운 시간이 어디 있으랴 싶다.



{FILE:4}
 1 정상 리지에 올라서는 백 선배 뒤로 몽블랑 쪽 파노라마가 펼쳐져 있다.


 2 크럭스 구간이 있는 일곱 번째 피치. 이 지점에서 머메리가 돌아섰다.


 3 제앙 빙하 상단에 마련한 캠프지. 해가 질 때부터 날씨가 나빠져 이틀간 고생했다.


 


짧은 기간에 따뜻한 화강암벽과 혹독한 폭풍설 모두 경험


잠시 후, 3명의 클라이머들이 남서봉을 넘어 우리가 있는 정상으로 건너왔다.


등반출발지점에서 만났던 에스파니아인들이었다.


 홀라 치린(Hola Chilin)은 도착하자마자 환호성을 지르며 우리에게 굳은 악수를 건넨다.


 어찌 즐겁지 않을까. 이 순간만큼은 알피니즘이나 머메리즘의 정당성은 차후 문제였다.


 정당치 못한 수단을 이용해 정상에 선 우리 모두 즐거웠다.


그만큼 산은, 당 뒤 제앙은 포용력이 컸다.


에스파니아인들과 즐거움을 나누며 연락처를 주고받는다.


등반하며 서로를 찍은 사진을 주고받기 위해서였다.


그들과 헤어진 우리는 두 정상 사이의 안부에 내려서서


남서봉 아래에 설치되어 있는 하강지점으로 다가갔다.


조심해서 자일을 정리해 허공으로 던진다.


 직벽 및 오버행 바위를 타고 60m 자일로 세 번 하강해


설사면에 닿아 아이젠이며 피켈을 둔 출발지점에 이른다.

바위들 사이에 둔 장비를 찾아든 우리는 몽블랑 너머로 지는 오후의 햇살을 즐기며 하산했다.


너덜바위지대를 좌우로 오가며 내려와 캠프지에 이르니 오후 6시였다.


캠프지 뒤편 바위 아래로 흐르는 물을 떠 허기진 배를 채우며


당 뒤 제앙을 오른 즐거움을 다시 한 번 더 느껴본다.


바로 전의 등반이었지만 꿈만 같아 이미 한 장의 멋진 추억으로 각인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하늘도 우리를 시샘했는지 해가 기울고부터 날씨가 나빠졌다.


바람의 세기가 강해지더니 이내 먹구름이 다가와 사방을 에워싸 버렸다.


멋진 저녁놀을 기대했건만 허사였다. 일찌감치 텐트 안 침낭 속에 들어 잠을 청한다.


밤새 펄럭이는 텐트 자락에 싸락눈이 부딪치는 소리를 들으며 잠을 설쳤다.

다음 날 아침이 되자 날씨는 더 나빠져 급히 짐을 챙긴다.


휘몰아치는 눈보라를 뚫고 설원을 가로지른다.


천둥번개까지 치는 와중에 헬브로너 전망대에 이르니 세 팀이 먼저 도착해 있었다.


그들 모두 눈보라를 피해 와 있었다.


문제는 샤모니행 횡단 곤돌라가 눈보라 때문에 운행하지 않았다.


모두 전망대 휴게실의 작은 난로 가에 모여 언제 눈보라가 그칠지 모를 지루한 기다림의 시간을 맞이했다.


 결국 이 눈보라는 이틀간 연이어졌다.


우리는 전망대 난간에 텐트를 치고 폭풍설을 체험하며 하룻밤 묵고서


 할 수 없이 이탈이아로 내려가 쿠르마이어에서 몽블랑 터널을 지나 샤모니로 돌아왔다.


그처럼 짧은 기간에 따뜻한 화강암벽과 혹독한 폭풍설을 경험한 극적인 4,000m급 봉의 알파인 등반이었다. 


 


산행 Guide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국경선상에 위치한 당 뒤 제앙은


시간적인 여유를 두고 이틀에 걸쳐 등반하는 게 바람직하다.


필자처럼 첫날 등반 후,


캠핑을 하거나 토리노 산장을 이용할 수 있으며 반대로 이튿날 일찍 등반 후 하산할 수 있다.


남서면에 햇살이 드는 오후에 등반하는 게 낫기에


등반 후에 느긋하게 몽블랑 산군의 저녁 풍광을 즐기는 편을 권하고 싶다.

등반 후 하산은 남벽에서 곧바로 하강하면 된다.


두 봉우리 사이의 안부에서 5m 정도 남서봉 아래로 횡단하면 하강 포인트가 있다.


하강 자일의 길이는 25m인 경우 6회, 50m인 경우 3회면 안부까지 내려올 수 있다.


직벽 및 오버행을 하강해야 한다.


 한 시간 반쯤 소요.


등반출발 지점인 제앙 빙하 상단까지 다시 두 시간쯤 소요되며


여기서 헬브로너 전망대나 토리노 산장까지 또 한 시간쯤 걸린다.

등반 시즌은 벽면에 눈이 없는 여름시즌에나 가능하다.


정상에서 사방으로 펼쳐지는 몽블랑 산군의 파노라마는 주변의 어느 산정에서보다 빼어나다.


 토리노 산장 전화번호는 39 0165 84 40 34. 석·조식 포함 1박 산장비 약 45유로.


샤모니-헬브로너 케이블카 60유로, 헬브로너-쿠르마이어 케이블카 34유로 등이다.



{FILE: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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