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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허긍렬씨 드류 등반기

한승민 2012.05.21 15:39 조회 수 : 808

알프스 통신 드류 북벽

글·사진 허긍열 알프스 통신원 www.goalp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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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단부 바위지대의 두 번째 피치. 카라비너가 부족해 모든 하켄에 자일을 통과시키지 못했다.

샤모니 계곡을 내려다보고 있는 대표적인 침봉을 하나만 꼽으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드류 즉, 프티 드류(Petit Dru·3730m)를 지목할 것이다. 어느 쪽에서 보든 정상에서 바닥까지 깎아지른 화강암 덩어리는 강렬한 인상을 발산하기 때문이다. 특히 이 봉우리의 서면은 많은 등반가들을 매료시키고 있는데, 북면에도 그에 버금가는 루트들이 있다. 그랑 드류(Grand Dru·3754m)와 프티 드류 사이의 꼴에서 북쪽으로 타고내리는 노스 꿀르와르 루트가 바로 그것이다. 물론 이젠 더 이상 꿀르와르 중단부에 빙벽이 형성되지 않아 엄밀히 말해 꿀르와르 등반이라고 할 순 없다. 하여튼 여름에도 햇살이 닿지 않는 이곳은 당당히 알프스의 북벽등반을 대표해 도전적인 알피니스트들을 매혹시키고 있다.
한 여름에도 햇살 닿지 않는 드류 북벽

여전히 겨울 찬바람이 머물고 있던 4월초, 겐기 나루미와 함께 드류 북벽으로 향했다. 그는 약 5개월간 샤모니에 머물며 알파인 등반을 경험하고 있는 일본 산악인이다. 침낭이며 식량, 등반장비로 가득 찬 배낭을 짊어진 우리는 버스를 타고 아르장티에(Argentiere) 마을로 올라갔다. 그랑 몽테(Grand Montet·3295m) 전망대에 오르기 위해서였다. 일반적으로 드류 북벽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길이 있는데, 몽탕베르(Montenver)에서 올라가는 것과 그랑 몽테에서 접근하는 방법이 있다. 눈이 많은 겨울철에는 그랑 몽테에서 접근하는 편이 편하다.
많은 스키어들과 함께 케이블카를 타고 그랑 몽테에 오른다. 하늘에는 두둥실 뭉게구름이 떠있지만 맑은 날씨라 기분이 좋다. 우리가 오르고자 한 드류 북벽은 생각보다 훨씬 위압적인 모습으로 그늘져 있었다. 꼴 데 그랑 몽테(3233m)에 내려와 각자 장비를 챙겨 그랑 몽테 빙하를 내려간다. 200m 즈음 내려가자 완만하던 설사면의 경사가 급해진다. 또한 그 아래의 한 꿀르와르를 통해 낭 블랑(Nant Blanc) 빙하까지 내려가야 하기에 아이젠으로 갈아 신는다. 하지만 겐기는 괜찮다며 설피를 신은 그대로 내 뒤를 따라왔다. 한낮의 뜨거운 태양이 설사면의 눈을 무르게 해 아이젠에 스노볼이 계속해서 생겼다. 발걸음을 뗄 때마다 피켈로 아이젠 바닥을 쳐야 했다. 꿀르와르에 막 접어들려는 순간이었다. 바짝 따라오고 있던 겐기가 보다 급해진 설사면의 경사도에 대처하지 못하면서 미끄러지고 만다. 상체를 기우뚱하면서도 그는 본능적으로 배낭을 설사면 쪽에 기대면서 설피를 신은 발을 아래쪽으로 둔 채 쏜살같이 꿀르와르 아래로 추락했다. 눈 깜짝할 사이였다. 이제 등반이고 뭐고 다 끝이며 신속히 산악구조대에게 연락하는 게 급선무처럼 여겨졌다. 동시에 끝까지 그의 추락모습을 지켜봤다. 비명을 지르며 추락한 그는 필사적으로 제동하려 하지만 잘 되지 않았다. 약 300m 높이의 꿀르와르 중단부의 경사가 완만한 지점까지 미끄러진 그는 천만다행으로 멈춰 섰다.

걱정스런 심정으로 그에게 괜찮냐고 소리친다. 까마득한 아래에서 '오~케이'라는 응답이 들려왔다. 안도의 한숨을 쉬고 그가 추락해 미끄러진 설사면을 따라 내려간다. 한참을 내려가니 그의 고글이 한쪽 눈알이 튀어나간 상태로 내팽개쳐 있다. 다행히 빠진 한쪽 알도 주변에서 주울 수 있었다. 이윽고 그의 스키스틱이며 설피 한 짝도 주워들고 그에게 내려간다. 어느새 그는 아이젠에 헬멧까지 챙겨 쓰고 몇 걸음 올라오고 있었다. 강렬한 태양빛에 잔뜩 눈을 찡그리며 내가 주워준 자신의 고글을 쓴 그는 다행히 다친 데가 없었다. 그는 나의 말을 듣지 않아 이렇게 미끄러져 미안하다고 했다. 몸을 바로 한 채, 그리고 한낮의 열기에 설사면의 눈이 잔뜩 녹아 있었기에 100m 이상 미끄러져 내렸지만 다행히 꿀르와르 중단에서 멈춰졌던 것이다. 추락하면서 상체가 아래로 향해 나동그라졌거나 눈이 이처럼 젖어있지 않았다면 꿀르와르 아래까지 계속해서 추락했을 것이며 굴곡이 있는 꿀르와르 아래쪽의 바위에 부딪쳤을 확률은 다분했다.

아이젠에 헬멧과 피켈까지 챙긴 겐기는 조심해서 내 뒤를 따라 꿀르와르를 내려왔다. 이제 낭 블랑 빙하에 내려선 것이다. 여기서 설피로 바꿔 신는다. 대각선으로 빙하를 가로질러 북벽 아래의 빙하 상단으로 오른다. 무거운 짐이 잔뜩 어깨를 짓누른다. 설피를 신었지만 푹푹 빠지는 눈밭 위의 발걸음은 무겁기만 하다. 진땀을 흘리며 오르막을 약 두 시간 올라 꼴 데 드류 아래의 완사면에 닿는다. 피크 상 놈(Pic Sans Nom·3791m)이 시작되는 바위 쪽 아래를 보니 누군가가 설동을 판 흔적이 있다. 가보니 배낭 4개가 있었다. 북벽 쪽에서 사람소리가 들렸기에 그들의 것이리라.
우리는 10여m 아래의 다소 완만한 눈밭에 자리를 잡는다. 매트리스를 깔고 구름 사이로 비치는 오후의 따뜻한 햇살을 즐긴다. 차도 끓여 마시며 점심 겸 저녁도 먹는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태양이 서쪽 하늘에서 높이를 한껏 낮추던 무렵, 4명의 산악인들이 하나 둘씩 도착했다. 잔뜩 지쳐 있는 이들은 이태리 토리노에서 온 산악인이었다. 해가 지려면 아직 두 시간 정도 남아있었기에 곧장 짐을 챙겨 샤모니로 내려간다는 그들에게 코펠 한 가득 따뜻한 차를 끓여주니 고맙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설피를 신고 몽탕베르 쪽으로 내려가는 그들 너머 서쪽 하늘에는 구름이 짙게 깔려있었다. 물론 드류 북벽에도 반 이상 먹구름이 머물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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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크 상놈 쪽인 왼편으로 잘못 올라가 시간을 허비하고 돌아서고 있다.

그랑 몽테와 몽탕베르에서 접근 가능해
이태리인들이 떠나고 나니 정적이 감돈다. 그들이 사용한 설동으로 자리를 옮긴다. 설동이라기 보단 천장이 반 이상 뻥 뚫린 오목한 참호였는데, 바람은 충분히 막을 수 있어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반 즈음 하늘을 가린 눈처마에서 연신 물이 떨어져 내렸다. 밤이 깊어 기온이 내려가면 괜찮으리라 생각하며 침낭 속에 몸을 파묻는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칠흑의 어둠을 가르는 랜턴 빛줄기에 눈송이들이 떨어진다. 날씨가 좋을 거라는 일기예보를 믿었기에, 눈송이들이 그다지 크지 않아 큰 걱정 없이 다시 침낭 속으로 파고든다. 얼마나 더 누웠던가. 시계를 보니 새벽 5시가 다 되어간다. 일어나 침낭에서 상체만 드러낸 채 버너에 불을 붙이고 눈을 녹이니 겐기가 일어난다. 하루가 시작되었다.
차를 마시고 빵을 먹으며 등반장비를 챙길 때였다. 2명의 산악인이 불쑥 나타나 북벽으로 향했다. 아마도 그들은 그랑 몽테 전망대에서 자고 두세 시간 전에 출발했을 것이다. 북벽을 등반하는 동행이 있다는 생각에 길 잃을 걱정은 안 해도 되겠구나, 생각하며 우리도 출발을 서두른다. 침낭이며 설피 등 불필요한 것들을 한쪽 모퉁이에 놓아두고 북벽으로 향한다. 헤드랜턴을 켠 채 긴 설사면을 오르고 또 오른다. 이윽고 북벽 하단부에 이른다. 주변이 밝아와 랜턴이 필요 없을 정도다. 루트는 넓은 꿀르와르의 설사면을 따라야 했다. 각자 자일 한 동씩 멘 우리는 확보 없이 따로 오르기로 한다. 이윽고 넓은 믹스지대가 이어졌다. 바위지대 사이사이로 빙벽들이 이어져 있어 어렵지 않게 오른다. 위에서 끊임없이 쏟아지는 작은 분설 사태의 통로도 두 번 통과한다. 이제 자일확보가 필요할 정도로 경사가 세졌으며 얼음도 얇아졌다.

이 300m 높이의 하단부 믹스 지대를 거의 다 올랐을 때다. 상단부 좌측으로 우리 먼저 오른 두 명의 산악인이 지나간 자국이 설사면에 나 있다. 계속해서 그들을 따라간다. 한데 두 피치 정도 더 오르니 뭔가 이상했다. 아무래도 그들을 따라간 게 잘못이었다. 우리들이 오르고자 한 루트와는 달리 그들은 피크 상놈 쪽으로 진입한 것이었다. 할 수 없이 되돌아선다. 적어도 한 시간 이상 시간을 허비하며 드류 북벽으로 다시 진입한다.
마침내 제대로 루트에 접어들었다는 확신이 섰다. 가이드 책자에서 본 북벽 중단부의 바위지대에 난 루트를 찾았기 때문이다. 하단부 믹스 지대의 최고점까지 뒤따라온 겐기는 급히 바지를 내리고 소변을 본다. 등반출발 전에 그런 불필요함을 사전에 비워두는 습관이 들지 않은 탓이었다. 이제부터 북벽 중단부 바위지대를 오를 차례다. 이제 겐기가 선등할 차례라 장비를 챙기던 그는 퀵드로 6개를 요구했다. 하지만 나에겐 혹시나 싶어 챙겨온 2개뿐이었다. 서로 잘못 알아듣고 챙겨오지 않은 것이다. 그는 아이스 스크루 6개를 준비한다고 해서 퀵드로도 6개를 함께 준비하는 것으로 알아들었던 것이다. 겐기는 이제 큰일 났다며 걱정했지만 그래도 우리가 지닌 카라비너만으로도 등반이 가능하다며 힘주어 말했다. 곧 나의 확보를 받으며 겐기가 앞서간다. 빙사면을 횡단해 넓은 크랙을 따라 오른다. 바위를 할퀴는 아이젠과 피켈의 시끄러운 소리가 몇 번 들린 후, 바위턱에 올라 프렌드로 자일을 통과시켜 약 5m 다운클라이밍을 하고 한 피치를 끊었다.

곧 그에게 도착해보니 약 50m 높이의 직벽이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에게 장비를 넘겨받고 출발한다. 가는 크랙에 하켄들이 2~3m 간격으로 박혀있다. 아이젠과 피켈의 피크를 하켄 구멍에 걸고 조심스럽게 카라비너를 끼워 자일을 통과시킨다. 하지만 카라비너가 부족한 관계로 모든 하켄에 자일을 다 통과시키지 못하고 네다섯 번째 하켄에 하나씩 카라비너를 걸 수밖에 없다. 직벽과 오버행 구간이 연이어지다보니 엄청난 완력이 요구되었다. 배낭 또한 어깨를 짓눌렀다. 중간 이후부터는 하켄을 통과할 때마다 매달려 쉰다. 드디어 마지막 바위턱을 넘는다. 너트 하나를 간신히 설치하고 조심해서 오르니 큰 암각이 눈에 들어왔다. 슬링을 걸고 떨려오는 팔을 털며 후등자에게 신호한다.
한참 후에 바위턱에 올라서며 모습을 나타낸 겐기는 혀를 내두르고 머리를 흔든다. 이런 등반은 처음이라고 한다. 잠시 쉬며 장비를 챙긴 겐기는 다음 피치를 오르기 시작했다. 간신히 작은 직벽을 오른 후, 한 동안 오른쪽 대각선으로 믹스지대를 지나 다시 직벽을 오른다. 그에게 도착해보니 이제 시간은 정오가 가까워졌다. 새벽에 우리 먼저 출발한 이들이 피크 상놈의 한 루트를 오르고 있는 모습이 건너다 보였다. 그들이 오르는 벽은 남서 방향으로 기울어져 있어 태양빛이 닿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따뜻함을 부러워할 겨를도 없이 우리는 서둘러야 했다. 어두워지는 저녁 8시까지 정상에 올라야 했다. 루트가 불분명했다. 내가 우측으로 10여m 횡단해 길을 살핀다. 잘못된 길이라 돌아선다. 이제 남은 길은 위로 곧장 뻗어 있는 손 재밍이 잘 되지 않을 것 같은 크랙을 따라 오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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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낭을 정리 중인 겐기 뒤로 드류 북벽이 우뚝 서있다. 북벽은 늘 이렇게 그늘져 있다.

하루로는 빠듯한 드류 북벽 등반
모든 장비를 잔뜩 챙기고 있던 겐기가 나서겠다고 했다. 그러면 배낭을 벗어두고 가라고 하니 그냥 시도하겠다며 자신감을 보인다. 하지만 채 1m도 오르지 않고 그는 배낭을 벗어둔 채 다시 크랙에 붙는다. 필사적으로 크랙에 붙은 그는 프렌드를 손처럼 사용하며 조금씩 전진해 간다. 시간은 지루하게 이어졌다. 이윽고 크랙에서 오른편으로 벗어난 그는 직벽을 오른다. 하지만 잘 되지 않는다. 몇 번이고 1m 정도 올랐다가 되돌아서며 뜸을 들인다. 신경질까지 나는지 고함을 질러댄다. 아래서 확보 보는 나는 파이팅이라는 소리로 격려할 뿐이다. 시간은 자꾸만 흘러갔다. 마침내 겐기가 또다시 한 피치를 끊었다.
그의 배낭에 나의 배낭을 쑤셔 넣고 뒤따른다. 맨몸으로 올라도 시원찮을 판에 비박장비며 식량, 두 대의 카메라 등을 넣은 배낭 두 개를 지고 오르려니 죽을 맛이다. 그래도 올라야만 한다는 생각에 할 수 없이 장갑까지 벗어 맨손으로 벙어리 크랙에 붙는다. 손등이며 손가락을 비틀며 간신히 오른다. 여기저기 생채기가 난무했다. 확보중인 겐기에게 도착하니 5m 높이의 바위턱만 지나면 상단부의 꿀르와르로 이어지는 설사면이다. 벌써 오후 5시가 넘었다. 시간이 급해졌다. 장비를 착용하고 있던 겐기가 곧바로 선두에 나선다. 또다시 60m 자일이 다 풀려가고서야 그는 멈췄다. 그에게 도착하니 이제 저녁 6시가 넘고 있었다. 곧장 내가 선두에 나선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상단부 꿀르와르의 빙벽이 나타났다. 좌측을 따라 오른다. 60m 나아가 후등자를 올린다. 시간은 6시 반이 넘었다. 하지만 앞으로 적어도 서너 피치는 더 올라야 정상이다. 한 시간 반 후면 어두워질 텐데 어둡기 전에 정상에 오르긴 불가능했다. 아쉽지만 여기서 자일하강을 할 수밖에 없다. 어제 이태리 산악인들은 중단부 바위지대 중간에서 되돌아섰다고 하지 않았던가. 과연 정상의 의미란 무엇이란 말인가.
빙벽지대에선 아이스 스크루로 구멍을 뚫어 슬링을 끼운 아발라코프(Abalakov) 앵커로, 바위지대에선 기존 확보지점이나 암각에 슬링을 걸고 긴긴 하강길에 접어들었다. 자일에 몸을 맡기며 미끄러져 내려 마침내 우리들의 잠자리에 찾아드니 밤 10시가 넘었다. 정상에 못 간 아쉬움이 남아있었지만 따뜻한 차를 마시며 하루 동안 거의 먹지 못한 주린 배를 채우고 침낭에 찾아드니 힘든 등반후의 기쁨이 단잠과 함께 찾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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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단부 세 번째 피치의 직벽을 오르는 겐기.


INFORMATION
드류 북벽 등반 길잡이

1974년 12월 28~31일에 발터 세친넬과 크라우드 제거가 초등한 이 루트의 난이도는 VI 5, 5c/A1급이다. 등반은 캠 및 너트 한 조씩과 상하단부의 빙벽에서 필요한 아이스 하켄 대여섯 개면 충분하다. 한편 등반출발지까지의 접근은 그랑 몽테 전망대나 몽탕베르 두 곳에서 하는데, 대체로 겨울철엔 그랑 몽테에서 여름철엔 몽탕베르에서 하고 있다. 등반 후 정상에서의 하산은 남서 꿀르와르로 자일하강하거나 프티 드류 정상을 거쳐 노멀루트를 통해 샤푸아(Charpoua) 산장으로 내려갈 수 있다. 물론 도중에 기존확보물을 이용해 하강할 수 있는데, 확보상태가 불량하기에 많은 주요를 요한다. 그리고 여름철 등반에서는 하단부 믹스지대에 낙석이 자주 떨어지기에 이른 시간에 통과하는 게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