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로주의에 대하여
등로주의(登路主義)라는 말은 등산계에서도 생소하다. 생소하다는 것은 널리 사용되지 않고 있으며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이야기다. 사실 이 말은 산악인 가운데서도 알피니스트라고 할 만한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일종의 등산의식이며 행위이다. 등산은 스포츠의 장르로 분류하기에는 너무나 특징 있는 야외활동이다. 등산의 특징이라면 그 용어와 기술과 장비인데, 그 가운데서도 용어는 단순한 명칭이라기보다는 그 뜻이 깊은 것들도 적지 않다. ‘등로주의’가 그 하나다.
등로주의는 등정주의를 예상하고 전제로 생긴 말이며, 그 반대는 결코 아니다. 그것은 등로주의가 등산의 역사에 나타난 과정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등로(登路)는 말 그대로 산에 오르는 길을 말한다. 등산 루트인 셈인데 등로주의의 등로는 그러한 일반적인 루트와 다른 데 의미가 있다. 1760년 몽블랑 오르는 이야기가 나왔을 때, 드 소쉬르가 몽블랑에 오르는 길을 찾아내는 자에게 상금을 주겠다고 했다. 당시 그는 자연과학자로 알프스 최고봉 정상에서 몇 가지 실험을 하고 싶은 마음에서 그런 제안을 했다.
그때 그는 몽블랑 정상으로 이어지는 길을 말했을 따름이다. 산에 오를 때에는 누구나 그 정상으로 이어지는 길을 찾아간다. 그 길은 자연 어렵지 않고 위험하지 않은 길이다. 굳이 힘들고 위험한 데를 갈 일이 아니니까. 이것은 일반적인 이야기로 등산세계에서 이른바 초등(初登)이라는 것을, 특히 초창기에는 모두 이런 길을 갔다. 미지의 산, 인적미답의 산을 처음 오르는 데는 그럴 수밖에 없으리라. 그리고 그 길이 자연스럽고 비교적 확실하니 그 뒤를 잇는 등반대들도 결국 그 길을 따라갔다.
‘노말루트’니 ‘커스토머리(Customary) 루트’라는 이름이 그래서 붙여졌다. 자연스럽고 관습적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러한 루트라고 언제나 반드시 오르기 쉽고 위험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고산일수록 거기에는 불확실하고 모험적인 요소와 조건이 따르기 마련이다. 등산의 발달은 이러한 초등의 과정을 거쳐 이루어졌으나 그 루트는 머지않아 극복될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나타난 것이 등로주의다. 등로주의는 등정주의를 의식하고 그것을 전제로 생긴 명칭인데, 등정주의가 등정에 중심을 두는 행위이다.
이에 반해 등로주의는 등로를 중시하는데서 나온 말이다. 이 두 가지 명칭과 표현은 원래 등산계에 없던 용어며, 선진 등산국에서는 이처럼 독립된 낱말로 사용하고 있지 않다. 다만 그들은 등산의 의식과 행위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이 말은 분명한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등산의 발전을 가져온 역사적 산물임에는 틀림없다. 1886년 알프스의 마터호른이 에드워드 윔퍼 일행에 의해 등정되면서 알프스의 4000m 미답봉으로 더 이상 오를 데가 없어지자 당시의 등반가들의 눈은 자연 샤모니에 군림하는 침봉군(針峰群)으로 갔다.
그러나 거기에는 오를만한 산릉이 없고 거의가 암벽과 빙벽이었다. 그 무렵 앨버트 프레드릭 머메리가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며, 보다 어려운 길을 찾아 도전하여 심신 양면에 극한을 추구하고 나섰다. 여기 ‘머메리즘’의 탄생이 있다. 1880년대에 머메리는 그의 주장으로 등산계로부터 이단자(異端者) 취급을 당했으나 결국 등산계도 그 길을 갈 수 밖에 없었다. 알프스에 미답봉이 없어지면서 정상을 노리던 것(peak hunting)의 의미가 약해지고 사람들의 눈은 ‘정상’에서 ‘등로’로 옮겨갔다.
일반 루트인 산릉에서 길이 없는 암벽이나 빙벽에 관심이 간 것이다. 등산에서는 언제나 등로(登路)와 고도(高度)가 문제되는데 그 중에서도 등로에는 등반의 진수가 담겨있다. 다시 말해서 어려운 등로를 극복할 때 알피니스트의 정신과 기술이 발휘된다. 이때 등로란 노말루트를 벗어난 베리에이션 루트를 말하는데, 베리에이션(variation·영, variante·독)은 변형·변종의 뜻으로 그 형태와 조건은 그야말로 다양하다. 베리에이션 루트란 노말루트와 대조적인데, 이 양자가 한 눈에 그 모습을 드러내는 곳이 마터호른이다.
스위스 쪽에서 보는 그 전형적인 마터호른의 훼른리 산릉과 북벽이 그것인데, 바로 거기에 고전적인 등산과 현대적 극한등반의 역사가 새겨져 있다. 그 역사적 사실은 정사(正史)에 있는 대로다. 즉 1865년 윔퍼 일행이 마터호른을 초등했을 때, 그들의 루트는 훼른리 산릉이었으며, 그 뒤 머메리즘이 등산계에 제창되고 1931년 가서야 북벽의 초등이 이뤄졌다. 그 1930년대는 알프스의 3대 북벽으로 마터호른과 그랑드 조라스 그리고 아이거 등의 거벽이 첨예 등반가들의 각축장이 된 시기였으며, 등로주의가 역사적 전환기를 가져온 시기였다.
등로주의의 핵심은 베리에이션 루트에 있으며 그 내용과 형식에는 큰 차이가 있다. 1831년의 독일 슈미트 형제의 마터호른 북벽 도전으로부터 한 세대가 지난 1962년에는 발터 보나티가 단독 동계 초등을 해냈다. 이것은 베리에이션 루트의 조건에 따른 등반 사조(思潮)의 변화를 말한다. 알피니즘의 역사는 한 마디로 등정주의가 등로주의로 변천한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샤텔리우스의 말대로 ‘등산은 길이 끝나는 데서 시작한다’. 진정 길이 끝나는 곳은 암벽이나 빙벽이다.
그리고 여기는 머메리에 따르면 ‘정상의 방법으로는 도저히 오를 수 없다(absolutely inaccessible by fair means)’. 머메리는 20세기를 눈앞에 둔 1895년 낭가 파르바트를 오르다가 돌아오지 못했지만, 그의 이름은 세계 등반사에 영원히 남았다. 머메리는 세계가 아직 히말라야를 모를 때 샤모니 침봉군에서 샤르모, 그레퐁, 당 뒤 르캥 등을 초등정 했지만, 그가 당 뒤 제앙에 올랐을 때 남겨 놓았다는 ‘정상 방법으로 도저히 오를 수 없다’는 그 쪽지에 이미 등로주의의 원형이 엿보인다.
그가 그곳에 오른 지 2년 뒤, 셀라 형제와 마키냐 형제 등 4명이 처음으로 사다리와 쐐기, 고정 자일 등을 사용해서 그곳을 오른 것이 이를테면 인공등반의 시작으로 볼 때 머메리즘의 의식과 행위를 구체적으로 이해하게 된다. 그러나 등로주의는 단순한 암벽등반이나 빙벽등반과 다르다. 그 조건과 형태의 범주는 지형의 어려움을 벗어나 정신과 육체의 극한 상황으로 이어진다. 거기에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의지의 문제가 표면에 나오며, 등반가의 시야(視野)가 주역이 된다.
우리는 그 좋은 예를 예지 쿠쿠츠카와 크리스 보닝턴에서 본다. 쿠쿠츠카의 히말라야 자이언츠 14봉 완등은 메스너 뒤를 따른 것으로 돼있으나 등반의 의식과 행위 면에서는 선등자를 앞서고 있다. 무엇보다도 그가 모두 베리에이션 루트로 갔다는 것은 평가할 만하다. 또한 보닝턴의 경우 일찍이 에베레스트 남서벽에 도전한 그의 선견(先見)도 선견이지만, 그는 유능하고 오래된 파트너 둘을 희생하면서까지 에베레스트 미답릉이던 북동릉(당시 등반기는)으로 도전하였다.
그들 앞에는 언제나 등정보다 등로가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에베레스트를 다녀오고 30년이 지난 오늘날, 그간의 우리 산악계의 에베레스트 도전 양상을 보면, 60여 등반대 가운데 노말루트를 벗어난 팀이 크게 눈에 띄지 않는다. 에베레스트는 1977년 이후 도전 양상이 크게 전환하지만 한국뿐만 아니라 외국의 경우도 여전히 노말루트를 택하는 경향이다. 이것은 물론 안전과 등정의 확률을 생각한 결과겠지만 알피니즘의 조건이 등정주의에서 등로주의 경향으로 방향전환 한지도 오랜 점을 생각할 때 진정한 의미에서 알피니즘을 추구한다면 유감된 일임에 틀림없다.
특히 미답봉이 없는 이때 미답 루트의 매력을 알피니스트가 외면한다면 그가 설 땅은 없다 해도 할 말이 없으리라. ‘알피니즘의 조건이 등정주의에서 등로주의 경향으로 방향전환 한지도 오랜 점을 생각할 때 진정한 의미에서 알피니즘을 추구한다면 노말루트의 답습은 유감된 일임에 틀림없다. 특히 미답봉이 없는 이때 미답 루트의 매력을 알피니스트가 외면한다면 그가 설 땅은 없다 해도 할 말이 없으리라.’
- 글 김영도 한국등산연구소장 -
(주) 머머리즘 [mummerism/등로주의]
[영국의 등반가 머머리(Albert Frederick Mummery)가 1880년 주창한 등반 정신(사상)으로, 등로주의(登路主義)라고도 한다. 가이드를 앞세워 가장 쉬운 코스를 선택해 정상에 오르기만 하면 된다는 전통적인 등정주의(登頂主義)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쉬운 능선을 따라 정상에 오르기보다는 절벽 등 어려운 루트를 직접 개척해 가며 역경을 극복해 나아가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등로주의(登路主義)라는 말은 등산계에서도 생소하다. 생소하다는 것은 널리 사용되지 않고 있으며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이야기다. 사실 이 말은 산악인 가운데서도 알피니스트라고 할 만한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일종의 등산의식이며 행위이다. 등산은 스포츠의 장르로 분류하기에는 너무나 특징 있는 야외활동이다. 등산의 특징이라면 그 용어와 기술과 장비인데, 그 가운데서도 용어는 단순한 명칭이라기보다는 그 뜻이 깊은 것들도 적지 않다. ‘등로주의’가 그 하나다.
등로주의는 등정주의를 예상하고 전제로 생긴 말이며, 그 반대는 결코 아니다. 그것은 등로주의가 등산의 역사에 나타난 과정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등로(登路)는 말 그대로 산에 오르는 길을 말한다. 등산 루트인 셈인데 등로주의의 등로는 그러한 일반적인 루트와 다른 데 의미가 있다. 1760년 몽블랑 오르는 이야기가 나왔을 때, 드 소쉬르가 몽블랑에 오르는 길을 찾아내는 자에게 상금을 주겠다고 했다. 당시 그는 자연과학자로 알프스 최고봉 정상에서 몇 가지 실험을 하고 싶은 마음에서 그런 제안을 했다.
그때 그는 몽블랑 정상으로 이어지는 길을 말했을 따름이다. 산에 오를 때에는 누구나 그 정상으로 이어지는 길을 찾아간다. 그 길은 자연 어렵지 않고 위험하지 않은 길이다. 굳이 힘들고 위험한 데를 갈 일이 아니니까. 이것은 일반적인 이야기로 등산세계에서 이른바 초등(初登)이라는 것을, 특히 초창기에는 모두 이런 길을 갔다. 미지의 산, 인적미답의 산을 처음 오르는 데는 그럴 수밖에 없으리라. 그리고 그 길이 자연스럽고 비교적 확실하니 그 뒤를 잇는 등반대들도 결국 그 길을 따라갔다.
‘노말루트’니 ‘커스토머리(Customary) 루트’라는 이름이 그래서 붙여졌다. 자연스럽고 관습적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러한 루트라고 언제나 반드시 오르기 쉽고 위험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고산일수록 거기에는 불확실하고 모험적인 요소와 조건이 따르기 마련이다. 등산의 발달은 이러한 초등의 과정을 거쳐 이루어졌으나 그 루트는 머지않아 극복될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나타난 것이 등로주의다. 등로주의는 등정주의를 의식하고 그것을 전제로 생긴 명칭인데, 등정주의가 등정에 중심을 두는 행위이다.
이에 반해 등로주의는 등로를 중시하는데서 나온 말이다. 이 두 가지 명칭과 표현은 원래 등산계에 없던 용어며, 선진 등산국에서는 이처럼 독립된 낱말로 사용하고 있지 않다. 다만 그들은 등산의 의식과 행위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이 말은 분명한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등산의 발전을 가져온 역사적 산물임에는 틀림없다. 1886년 알프스의 마터호른이 에드워드 윔퍼 일행에 의해 등정되면서 알프스의 4000m 미답봉으로 더 이상 오를 데가 없어지자 당시의 등반가들의 눈은 자연 샤모니에 군림하는 침봉군(針峰群)으로 갔다.
그러나 거기에는 오를만한 산릉이 없고 거의가 암벽과 빙벽이었다. 그 무렵 앨버트 프레드릭 머메리가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며, 보다 어려운 길을 찾아 도전하여 심신 양면에 극한을 추구하고 나섰다. 여기 ‘머메리즘’의 탄생이 있다. 1880년대에 머메리는 그의 주장으로 등산계로부터 이단자(異端者) 취급을 당했으나 결국 등산계도 그 길을 갈 수 밖에 없었다. 알프스에 미답봉이 없어지면서 정상을 노리던 것(peak hunting)의 의미가 약해지고 사람들의 눈은 ‘정상’에서 ‘등로’로 옮겨갔다.
일반 루트인 산릉에서 길이 없는 암벽이나 빙벽에 관심이 간 것이다. 등산에서는 언제나 등로(登路)와 고도(高度)가 문제되는데 그 중에서도 등로에는 등반의 진수가 담겨있다. 다시 말해서 어려운 등로를 극복할 때 알피니스트의 정신과 기술이 발휘된다. 이때 등로란 노말루트를 벗어난 베리에이션 루트를 말하는데, 베리에이션(variation·영, variante·독)은 변형·변종의 뜻으로 그 형태와 조건은 그야말로 다양하다. 베리에이션 루트란 노말루트와 대조적인데, 이 양자가 한 눈에 그 모습을 드러내는 곳이 마터호른이다.
스위스 쪽에서 보는 그 전형적인 마터호른의 훼른리 산릉과 북벽이 그것인데, 바로 거기에 고전적인 등산과 현대적 극한등반의 역사가 새겨져 있다. 그 역사적 사실은 정사(正史)에 있는 대로다. 즉 1865년 윔퍼 일행이 마터호른을 초등했을 때, 그들의 루트는 훼른리 산릉이었으며, 그 뒤 머메리즘이 등산계에 제창되고 1931년 가서야 북벽의 초등이 이뤄졌다. 그 1930년대는 알프스의 3대 북벽으로 마터호른과 그랑드 조라스 그리고 아이거 등의 거벽이 첨예 등반가들의 각축장이 된 시기였으며, 등로주의가 역사적 전환기를 가져온 시기였다.
등로주의의 핵심은 베리에이션 루트에 있으며 그 내용과 형식에는 큰 차이가 있다. 1831년의 독일 슈미트 형제의 마터호른 북벽 도전으로부터 한 세대가 지난 1962년에는 발터 보나티가 단독 동계 초등을 해냈다. 이것은 베리에이션 루트의 조건에 따른 등반 사조(思潮)의 변화를 말한다. 알피니즘의 역사는 한 마디로 등정주의가 등로주의로 변천한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샤텔리우스의 말대로 ‘등산은 길이 끝나는 데서 시작한다’. 진정 길이 끝나는 곳은 암벽이나 빙벽이다.
그리고 여기는 머메리에 따르면 ‘정상의 방법으로는 도저히 오를 수 없다(absolutely inaccessible by fair means)’. 머메리는 20세기를 눈앞에 둔 1895년 낭가 파르바트를 오르다가 돌아오지 못했지만, 그의 이름은 세계 등반사에 영원히 남았다. 머메리는 세계가 아직 히말라야를 모를 때 샤모니 침봉군에서 샤르모, 그레퐁, 당 뒤 르캥 등을 초등정 했지만, 그가 당 뒤 제앙에 올랐을 때 남겨 놓았다는 ‘정상 방법으로 도저히 오를 수 없다’는 그 쪽지에 이미 등로주의의 원형이 엿보인다.
그가 그곳에 오른 지 2년 뒤, 셀라 형제와 마키냐 형제 등 4명이 처음으로 사다리와 쐐기, 고정 자일 등을 사용해서 그곳을 오른 것이 이를테면 인공등반의 시작으로 볼 때 머메리즘의 의식과 행위를 구체적으로 이해하게 된다. 그러나 등로주의는 단순한 암벽등반이나 빙벽등반과 다르다. 그 조건과 형태의 범주는 지형의 어려움을 벗어나 정신과 육체의 극한 상황으로 이어진다. 거기에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의지의 문제가 표면에 나오며, 등반가의 시야(視野)가 주역이 된다.
우리는 그 좋은 예를 예지 쿠쿠츠카와 크리스 보닝턴에서 본다. 쿠쿠츠카의 히말라야 자이언츠 14봉 완등은 메스너 뒤를 따른 것으로 돼있으나 등반의 의식과 행위 면에서는 선등자를 앞서고 있다. 무엇보다도 그가 모두 베리에이션 루트로 갔다는 것은 평가할 만하다. 또한 보닝턴의 경우 일찍이 에베레스트 남서벽에 도전한 그의 선견(先見)도 선견이지만, 그는 유능하고 오래된 파트너 둘을 희생하면서까지 에베레스트 미답릉이던 북동릉(당시 등반기는
그들 앞에는 언제나 등정보다 등로가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에베레스트를 다녀오고 30년이 지난 오늘날, 그간의 우리 산악계의 에베레스트 도전 양상을 보면, 60여 등반대 가운데 노말루트를 벗어난 팀이 크게 눈에 띄지 않는다. 에베레스트는 1977년 이후 도전 양상이 크게 전환하지만 한국뿐만 아니라 외국의 경우도 여전히 노말루트를 택하는 경향이다. 이것은 물론 안전과 등정의 확률을 생각한 결과겠지만 알피니즘의 조건이 등정주의에서 등로주의 경향으로 방향전환 한지도 오랜 점을 생각할 때 진정한 의미에서 알피니즘을 추구한다면 유감된 일임에 틀림없다.
특히 미답봉이 없는 이때 미답 루트의 매력을 알피니스트가 외면한다면 그가 설 땅은 없다 해도 할 말이 없으리라. ‘알피니즘의 조건이 등정주의에서 등로주의 경향으로 방향전환 한지도 오랜 점을 생각할 때 진정한 의미에서 알피니즘을 추구한다면 노말루트의 답습은 유감된 일임에 틀림없다. 특히 미답봉이 없는 이때 미답 루트의 매력을 알피니스트가 외면한다면 그가 설 땅은 없다 해도 할 말이 없으리라.’
- 글 김영도 한국등산연구소장 -
(주) 머머리즘 [mummerism/등로주의]
[영국의 등반가 머머리(Albert Frederick Mummery)가 1880년 주창한 등반 정신(사상)으로, 등로주의(登路主義)라고도 한다. 가이드를 앞세워 가장 쉬운 코스를 선택해 정상에 오르기만 하면 된다는 전통적인 등정주의(登頂主義)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쉬운 능선을 따라 정상에 오르기보다는 절벽 등 어려운 루트를 직접 개척해 가며 역경을 극복해 나아가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남이 안간 길을 가는것이 재미가 있는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