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종주기

by 장일경 posted Oct 16,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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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행담당자 : 장일경, 황선태(좀 오래된 예비신입회원)
◎ 대 상 산 : 지리산
◎ 산행코스 : 화엄사-> 천와봉-> 백무동
◎ 산행기간 : 10월 11일~14일
◎ 산행지역날씨 : 맑음
◎ 산행방식 : 빡센 워킹

⊙ 산행내용 :
그때가 89년도인가 대학 3학년 졸업여행 대신으로 과 동료 2명과 아식스 운동화에 면바지 입고 중산리에서 화엄사까지 역 종주를 하며 다시는 이런 생고생하지 않겠다고 다짐 아닌 다짐으로 힘겹게 종주를 마쳤던 때가 그리 멀지 않은 것 같은데, 언제부턴가 나도 모르게 제대로 된 지리산 종주해봐야 겠다고 마음 한 켠에 새겨 두고 있었던 것 같다.
마침 하반기 칠선계곡 트레킹 일정에 맞추어 혼자서라도 화엄사에서 부터의 종주를 작심하고
있던 중 선태씨가 같이 가자고 연락이 왔다.
흐미 반가운 거~~ 아무래도 혼자는 좀 청승맞지…암!

시집가는 날 등창난다고 했던가 출발 당일인 목요일 하루 종일 정신없이 바쁘게 지내고 담날까지
일이 좀 밀려있다..
금요일 하루 혼자 휴무할려니 사무실 식구들에게 좀 미안하고 아무리 대빵이라지만 눈치가 무지하게 보인다.
극기훈련하고 와서 열심히 일하겠다고 아웅거리고 뒤통수에 꽂히는 시퍼런 시선을 애써
뒤로하고 집으로 냅다 달린다.
불과 2시간만에 배낭을 허둥지둥 꾸리고 어이없어하는 6개의 강철 눈빛을 받으며 용산역으로 내달린다.
목요일 저녁 10시 50분발 구례구행 무궁화 열차를 타려는 산행객들이 의외로 많다.
저만치서 선태씨가 큼직한 배낭을 둘러메고 씩씩하게 걸어온다.
정시에 열차는 출발하고 각자 맥주 3캔으로 장도의 출정을 자축한후 잠깐 눈을 붙이고 나니
3시 10분, 곧 구례구역에 도착한다는 안내 방송이 정신을 바짝 차리게 한다.
어둠을 가르며 수많은 산행객들이 시골 작은 역사를 가로질러 나가고 이윽고 새벽 장터 같은
분주함이 순간 조그만 시골 역전을 활기로 가득 채운다.
우리는 곧 출발하는 구례터미널행 버스 타기를 포기하고 일단 청량고추를 잘게 썰어 넣어
매콤시원한 재첩해장국으로 아침 요기를 하고 혼자 산행을 온 40후반의 등산객과 함께
택시로 화엄사 앞까지 곧바로 갔다.

새벽 4시10분 화엄사 옆 자그만 한 다리를 건너 장도의 산행을 시작한다.
헤드랜턴 불빛으로 보이는 연기암 안내표시를 따라 오르기를 1시간여 순간 산길이 없어져 버렸다.
지도 보며 연기암까지는 왔는데 다음부터 어디로 가야 하는가.
어둠 속에서 일행이 된 3명은 어미 잃은 병아리 마냥 이리저리 허둥대기만 한다.
그렇게 속절없이 오르내리기를 또 1시간여 겨우 전화로 지리산 남부관리소의 안내를 받아 산행코스를 찾으니 아무리 어둠 속이라지만 그 큰 산길을 놓치고 지나칠 수도 있는 아둔함에 너털 웃음을 짖는다.
설상가상 애시당초 초입부터 길을 잘못 잡아 1.8km나 우회한 탐방로로 돌아 왔음을 알고나니 초장부터 진이 빠진다.
같이 가던 한 분은 그날 세석대피소까지 가야 하는 일정이라 부리나케 먼저 올라 내달린다.
중재, 코재를 올라 치는데 경사가 가파르다 몸이 아직 덜 풀렸나?
첨부터 쓸데없이 시간과 체력을 낭비한 억울함 때문인가?
배낭무게가 물먹은 솜 가마니 같고 여간 숨이 가파오는 것이 아니다.
그나마 앞서 오르는 선태씬 훨씬 수월해 보인다.
가뿐 숨을 몰아쉬며 50분 운행에 10분 휴식을 고수하며 출발 5시간만인 오전 9시에 노고단 대피소에 도착했다.
제대로 왔으면 8시이전에 도착할 수 있었을 터인데.. ㅠㅠ
Let by gone, be by gone!
과거는 과거지사로 돌리고 일단 먹고보자.

라면도 끓이고 밥도 해서 아침으로 배를 든든히 채우고 10시에 다시 출발 노고단 언덕에 올라오니 조그만 쪽문이 열려 있고 그 뒤로 반야봉과 우리가 가야할 많은 봉우리들이 보인다..
물론 아득히 천왕봉도 어서 와보란 듯 저 만치 뒤에서 뾰족이 솟아 있다.
돼지령은 어딘지도 모르고 지나치고 임걸령을 지나 노루목을 거쳐 경상남도, 전라남도, 전라북도로 나뉘는 삼도봉에 오른다
이젠 어느 정도 운행에 속도도 붙고 지도상의 시간보다 빠르게 일정 진행되고 있어 전체적인 계획에 차질이 없을 것 같아 좀 안도가 된다.
화개재에서 뱀사골 대피소로 내려와 아침에 남겨둔 밥으로 점심을 간단히 해결한다.
뱀사골 대피소는 작년에 일시 폐쇄됐다가 최근 다시 정상 운영한다고 한다.
어쨌든 작고 볼품 없어 보인다.
다른 해석으로 예전의 산장 모습을 그대로 보전하고 있다고 봐야하나? 아무튼 영~ 거시기 했다.

봉지라면도 끓여 팔고 있는 뱀사골 대피소를 뒤로하고 그 옛날 경상도의 소금과 전라도 삼베등의 특산물 교역장이었다는 화개재로 다시 올라서 멀리 연하천 대피소를 향해 토끼봉(1533m)과 명선봉(1586m)을 넘는데 오르락 내리락 가파른 능선길을 하염없이 걷는다.
벌써 10시간 넘게 운행을 하고 있어 남은 거리가 지루하게만 느껴지고 선태씨도 힘들어 보인다. 긴 봉우리를 힘겹게 넘어 내르막 길, 또 가파른 봉우리가 나설 때마다 저걸 또 넘어야 되나~ 가는 신음과 긴 호흡이 고단함을 부추긴다.
12시간의 긴 운행 시간을 조금 넘길 즈음 한창 공사중인 연하천 대피소가 명선봉 넘어 나타난다.
이맘때가 4시20분경..
역시 옛날 산장다운 낡고 왜소한 외관에 좀 실망과 비박 장소 또한 한창 공사중이라 자재가 쌓여 있어 마땅치 않다.
벽소령 대피소로 가자니 시간는 이미 5시를 넘어서고 체력은 지쳐있고 주저주저 하고 있는데 마침 벽소령에서 도착하는 산행객이 화엄사에서 출발했으면 가지말라고 겁을 준다.

에라이~ 말릴때 참는다 싶어 산장지기에게 이야기를 하고 취사장으로 쓰는 컨테이너 막사 안에서 야영키로 자리 잡고 저녁 준비를 하고 푸짐한 지리산에서의 첫날밤을 맞이한다.
광주에서 온 40대 중후반 부부, 중산리에서 출발하여 벽소령을 지나 연하천 대피소까지 온-우리 사정 살피고 말려준-역시 광주에서 온 30중반 등산객, 그리고 성삼재에서 출발한 40후반의 나홀로 등산객(전주인지 목포인지 들었는데 뒤늦게 합류해서 기억이 잘 안남) 이렇게 6명이 컨테이너 취사장을 점령하고 껄죽한 술판(?)을 벌렸다.
덕분에 담날 배낭이 훨씬 가벼워 졌다.
즐거운 이야기 끝 가물 가물한 기억으로 잠자리에 들고,
나는 푹~ 잘 잤는데 다른 사람들은 밤새 감탄에 겨워 잘 못 잤다는 후문 속에 지리산에서의 이튿날은 밝아왔다.
다들 분주하게 산행 출발을 하고, 우리는 여유롭게 선태씨가 가져온 굴 국으로 아침 해장을 하고 8시경 벽소령을 향해 이틀째 산행을 시작한다.
역시 전날 떠나지 않기를 잘했다고 서로 깊이 안도하면서 가파른 능선길을 오르내리며 삼각고지, 형제봉을 넘어 2시간 만에 벽소령 대피소에 도착한다.
현대식 목조건물인 벽소령 대피소는 짙은 밤색 기름 유약칠을 하여 그저 웅장하기 마저 하다.
포카리 스웨트 자판기는 현대문명의 위대함을 대변하듯 1400여미터 고지의 대피소 한 켠에 떡 하니 자리를 잡고 있다.
물론 내용물은 sold out- 매진이었다..ㅠㅠ 선태씨 1000원짜리 지폐들고 살짝 멋쩍어 했다..

30여분 충분히 휴식을 하고 6.3km거리인 세석대피소를 향해 출발, 날씨도 좋고 오늘 일정도 장터목 산장까지라 급할 것 없이 여유롭게 산새를 즐기며, 감탄하며 그렇게 걷는다.
덕평봉 지나 망바위에서 만난 칠순이 돼 보임직한 노부부는 시간에 구애 받지 않고 자연인이되어 그렇게 지리산 종줏길을 즐기고 있었다. -오늘 못가면 내일가면 되지- 그냥 대구 집에까지만 가면 된다는, 젊은이들 보다 걷는 시간이 2배 걸린다며 잔잔히 웃으시는 모습이
망바위에서 보는 자연과 너무 잘 어울려 보인다.
그레고리 배낭, 알파이 스틱 확! 집어 던지고 싶었다!

칠선봉을 거쳐 영신봉을 힘겹게 지나 세석대피소에 다다르니 그래도 작년에 한번 왔봤던 곳이라 참 반갑고 왠지 익숙한 것 같이 마음이 편안하다.
이때가 1시30분경이라 좀 늦은 점심을 해먹고 오늘의 기착지인 장터목 대피소를 향해서
세석평전을 가로질러 한갓지게 출발~
촛대봉을 살짝넘고 삼신봉, 연하봉의 탁트인 경치를 즐기며 그렇게 장터목 대피소에 4시 30분경 도착 이틀째의 산행 일정을 마무리한다.
우선 취사장에서 저녁을 먹고 대피소 앞마당에 저만치에 비박터를 마련하고 어제 먹다 남은 술로
고단한 일과를 달래고 8시경 무수한 별빛을 바라보며, 장엄한 일출을 기대하며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옛날 장이 섰다는 장터목은 그 시끌벅쩍함으로 오늘날에도 그 이름 값을 톡톡히 하고 있는 듯하다.
새벽녘까지 술판이 벌어지고, 공단 직원들과 고성의 실랑이가 오고 가고, 화장실은 술집에서는 볼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부침게가 소변기에 가득하고…
엉망하고 진창이더만…ㅉㅉ

새벽 4시10분에 기상해서 하늘을 보니 조금 구름이 있는데 일출을 볼 수 도 있을 것 같은
기대감이 든다.
산정인지라 새벽녘이 꽤 춥다.
따뜻하게 밥을 삶아 누룽지를 만들고 라면 하나 끓이고 해서 따뜻하게 속을 채우고 나서니 5시 20분, 천왕봉까지는 1시간 10분거리 란다.
6시20분이 일출 예상시간이라고 엊저녁에 안내 방송이 있었던 지라 혹시 여차해서 일출을 못 보면 너무 억울할 것 같아 먼저 냅다 속도를 낸다.
일찍은 새벽이라 그런지 급경사를 오르는 선태씨가 힘들어 보인다.
같이 쳐지면 일출을 놓칠 것같아 일단 속도를 올려 본다. 선태씨 꾸역 꾸역 잘 따라 올라온다.
마침내 둘다 45분만에 천왕봉 정상에 섰다.
사실 섰다기 보다 수많은 군중들 사이에 끼어 있었다.

그 많았던 산행객들 사이에 3대가 덕을 쌓은 사람은 없었던가 보다.
아쉽게도 일출은 구름에 가려 제대로 보지 못하고, 한참이 지나 날이 꽤나 밝은 후에야 멀쓱한 태양을 볼 수 있었다.
아쉽지만 그래도 이 많은 사람들 중 3대가 덕 쌓은 사람이 없는 것 어떡하랴~~
그래도 지리산 종주의 대미를 이른 아침 천왕봉 정상에서 태양의 거룩한 비상과 함께 할 수 있어서 그 얼마나 훌륭한가..

이제 백무동으로 하산해서 칠선 계곡 워킹팀과 합류하는 과제가 남았다.
시간이 촉박하다.. 선태씨가 앞장 서더니 쏜살 같이 내려간다. 휘리뤽~~~
30분이 채 됬을까 다시 장터목 대피소로 돌아와 잠시 정비를 하고 본격적으로 백무동 하산길로 접어든다
바위 너덜지대를 지나고 완만한 능선을 내려오니 참샘으로 가는 가파른 내리막길이 나선다.
참샘을 내려오며 선태씨 약간의 무릎 통증을 호소한다.
아마 천왕봉에서 급히 내려온 것이 좀 무리가 있었던 것 같다.
그래도 심각한 정도은 아닌 것 같아 좀은 다행스럽다.
그렇게 하동바위를 지나고 지루한 하산길을 따라 2시간 걸려 백무동 매표소 앞을 내려온다.
상림공원에 있던 일행들과 연락을 하고 그래도 2박 4일의 종주길에 하산주가 없으면 섭섭하지~~.
작년 하산길에 들렀던 그 음식점에서 얼른 막걸리 한병과 김치두부로 둘만의 무사 종주 축하 하산주를 한잔 하고 상림공원으로 분위기 무진장 up되서 냉큼 달려간다.

올 겨울에는 설악산 백담사에서 소공원 코스도 한번 해야 겠다.
훌터 보고 싶은 산이 너무나 많아지고 있어 즐겁기만 하다.
늦바람이 이런 재미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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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호섭 2007.10.16 08:00
    고생혔다.나는 언제 해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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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뚝이 2007.10.16 08:08
    즐거운 종주를 하셨군요...지난 8월에 갔을땐...일출이 장관이었는데...그때 정상에서 엄홍길 선배님을 만나서 정상 사진도 한 방 찍었는데...담엔...가족 산행을 함 계획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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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수분 2007.10.16 09:12
    아이구마 부러바라 우리도 초장까지는 좋았는데 그만(?) 때문에 .....
    그래도 굿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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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재 2007.10.16 09:18
    88년 그날 구래구역의 새벽 바람이 생각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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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서은 2007.10.16 10:15
    형님 천와봉..ㅋㅋㅋ 천와봉..ㅋㅋㅋ 고생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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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연일 2007.10.16 11:30
    보람찬 산행하셨군요....종주 축하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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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현호 2007.10.16 11:43
    추억어린 종주였군요^^화엄사에서부터 시작하셨다니 그 체력에 박수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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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미정 2007.10.17 01:20
    부럽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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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미영 2007.10.17 15:24
    노고단까지 그렇게 고생스럽게 올라가시다니..요즘은 대부분 성삼재에서 올라가는데 대단하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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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미영 2007.10.17 15:25
    참, 배낭은 어케 잘 수선해서 가셨나요? 궁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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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일경 2007.10.17 21:44
    예, 덕분에 동네 가방 수선 전문집에 가서 튼튼하게 박음질해서 갔습니다. 간단한 걸 괜히 어렵게 여기고 있었네요..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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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언식 2007.10.18 17:54
    몇해전 나홀로 종주 했던기억이 나네요.....함께한 산행의 재미는 곱절이었겠지요...천왕봉에서 만날수 있었는데.....